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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뜻하지 않은 허송세월

해외근로자로 살기

by 싱가포르에서 허송생활 2020. 10. 3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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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을 졸업하기 전 국내 금융회사에 취업하여 이후 약 4-5년마다  직장을 옮기면서 2019년 초 남들보다는 다소 이른 나이인 40대 후반에 조기 은퇴를 하였다. 한국에서 약 10년간 일을 하였고 이후 약 15년 동안은 싱가포르에서 일을 하였기에 한국에서는 이르게는 40대 후반부터 시작된다는 비자발적 은퇴 압박이 아니라, 돌연 더 이상 일을 하기 싫다는 아니 더 이상 일을 한다면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홍콩에 있는 상사에게 전화로 퇴사를 알렸다.

 

  이후 내 인생에서 제일 긴 것 같았던 3개월의 인수인계를 마치고 다시 약 3개월간 휴식 기간을 가진 뒤  홀로 한국으로 돌아와 엄마와 함께 약 1년간의 시간을 보냈다. 간간이 싱가포르에 홀로 남은 남편을 보러 출국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온전히 한국에서 보낸 오랜만의 시간이었다. 1년이면 내가 다시 일하고 싶어 질 거라던 전 직장동료들이나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의 예상과는 달리 1년의 시간은 내 반평생의 시간을 점거했던 노동 없이 나름대로 즐겁고 바쁜 시간이었다.  한국을 떠난 지 15년의 시간이 흘러서 돌아왔으니 당연히 엄마와의 시간을 제외하면 나는 만날 사람도 없고 새로운 인맥을 만들려는 시도도 없이 1년의 시간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싱가포르 직장생활 중에 알게 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간간이 만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사회생활도 하지 않고 보낸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겪어 본 시간이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와 한국과 달리 다양한 취미생활을 위한 인프라가 잘 형성되어 있지 않은 싱가포르에서 살기에 포기했던 두어 개의 취미 생활에 도전하며 느긋하게 보낸 1년이었지만 내 기준으로 완전한 게으름을 만끽한 건 아니었다. 알게 모르게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강박관념을 모두 내려놓지는 못했다고나 할까?

 

 올해 3월 초 남편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올때는 다시 5월 초에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1년의 무직자 생활을 하고 나서 정말 더 이상 일 할 마음이 없다는 확신 비슷한 걸 가지게 된 나는 내심 본인도 조기 은퇴를 바라는 듯한 남편을 보면서 한국으로 돌아와 올해는 우리 두 사람의 영구귀국을 준비해야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에 있는 부동산을 정리하고 한국에 우리가 살 곳을 준비한다던가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데 싱가포르로 돌아오자마자 싱가포르 정부는 팬데믹으로 인한 국가차원의 셧다운을 실행하였다. 정부는 싱가포르 국민과 영주권자의 필수 불가결한 해외로의 여행을 금지하고 있고 나는 해외에 있는 많은 한국인들처럼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정말 예상치 않은 그러나 한 번은 꿈꾸었던 진정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덧글: 표지의 사진은 싱가포르와 전혀 상관이 없는 2017년말 파리 출장 중 며칠 휴가를 내서 방문했던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에서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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