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15년 정도 일하는 동안 지나치게 바쁘기도 하고 게으른 천성으로 인해 사실 한국인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다. 싱가포르 거주 한국인은 물론이고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도 연락을 거의 안 해서 꽤 많은 사람들이 싱가포르나 홍콩에서 일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회사를 퇴사 후 내가 좀 한가해졌다고 생각했던지 한국에 있는 지인들로부터 싱가포르에 취업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는 경우가 꽤 있었다. 사실 내가 헤드헌터도 아닌데 무슨 전문적인 정보를 줄 수는 없었고 내 경험에 비추어 몇 가지 팁을 주었다.
1) 한국에서 관련 경력이 있는 경우:
가장 좋은 대우로 쉽게 싱가포르로 취업할 수 있는 경우이다. 우리 부부는 모두 한국에서 당시 빅4 회계법인과 금융권 경력자였다. 일단 회계법인 근무 경력은 싱가포르 금융권 취업에 필수 조건도 아니고 그다지 플러스 알파로 작용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단지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내가 회계법인에 취업 후 1년이 채 안되었던 2000년에 해당 회계법인의 싱가포르 지사에서 개인적으로 transfer 제의가 왔었다. 혹시나 빅 4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빅 4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글로벌 회계법인 4곳을 일컫는 용어이다. 이 4개의 글로벌 회계법인은 국내 대형 회계법인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나는 그 빅 4의 하나와 파트너십을 맺은 국내 회계법인에 근무하고 있었고 당시 같은 빅 4의 싱가포르 지사에서 오퍼를 받은 것이다. 당시에는 영어를 할 수 있었던 회계사가 별로 없었고 싱가포르에는 회계사의 공급이 부족했던 시기라 출장차 한국에 왔던 싱가포르 지사의 매니저가 싱가포르로 돌아간 뒤 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으나, 회계사로서의 경력을 좀 더 한국에서 쌓고 싶었던 시기라 거절했었다
뜬금없이 회계법인에서의 경험을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해외취업의 가장 쉬운 길은 internal transfer 라는 걸 얘기하고 싶어서이다. 회계법인에서 4년간 근무 후 고객회사 중 하나였던 싱가포르계 은행의 서울지점으로 이직을 하였다. 그리고 2년이 채 안 돼서 같은 은행의 싱가포르 본점으로 옮겨왔다. 방법은 간단했다. 당시 본점에 있던 보스에게 내 의향을 밝혔고 마침 사람을 구하던 보스가 적극 찬성해서 모든 결정은 1주일도 안돼서 이루어졌다. 당시 서울지점의 내 자리에 들어왔던 후임자도 이후 내가 해당 은행을 관둔 뒤에 싱가포르 본점으로 옮겨왔다.
남편 (당시 남자친구)의 경우도 같은 회계법인에 근무하던 중 미국계 은행 서울지점으로 이직을 하였고 이직 후 1년 정도 지난 후 내가 싱가포르로 이직이 결정되었다는 말을 보스에게 하였고 그 후 몇 주안으로 당시 싱가포르 지점으로 이직이 승인되었다. 남들이 들으면 정말 운이 좋아서 우리가 해외에서 일해볼까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기회가 쉽게 동시에 찾아온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엔 이 모든 게 우리가 입사한 회사가 싱가포르에 더 큰 조직이 있었다는 게 주된 이유일 것이다.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는 외국계 금융기관에 대한 정보는 물론 그런 곳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취업준비생이 많았다. 사실 그 존재를 알더라도 사실 좋은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게 신입 초봉이 국내 금융기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고 지금도 더 낮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이 싱가포르 소재 금융기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 고려해 볼 만한 루트이다.
Internal transfer 가 아니더라도 관련 경력이 있다면 당연히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다른 업종은 모르겠으나 금융권에서 빈 자리가 난다면 가장 먼저 내부적으로 사람을 먼저 구한다. 글로벌 회사일수록 internal transfer를 권장하기 때문에 사내 정보망 등에 구인공고가 수시로 올라오고 지망자가 있으면 최우선으로 기회가 주어진다. 동시에 헤드헌터에서도 지원서가 오는데 내가 퇴사 전 2년여간은 심심치 않게 한국에서도 지원서류를 받았었고 그중에 한 명은 한국인이 채용됐었다.
정리하자면 제일 먼저 글로벌 회사의 경우 internal transfer를 고려하고 내부에서 매력적인 지원자가 없을 경우 외부에서 경력자의 지원서를 받는다. 경력자인 경우는 사실 그 지원자의 현재 위치 여부는 상관이 없다. 비슷한 능력과 경력의 소유자라면 싱가포르내 경력자가 선호되기도 하지만 일단 비슷한 경력의 경우 싱가포리안은 약간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연봉을 요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결국 런던에서 근무하던 프랑스계 지원자를 데려온 경우도 있었다. 싱가포르 금융계는 이직이 잦아서 싱가포리안의 경우 그 직종이 인기가 있다면 거의 1년마다 옮기는 경우도 허다하고 옮길 때마다 적어도 10% 이상의 연봉 인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아서 결과적으로 경력과 능력에 비해 과도한 연봉을 요구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 internal transfer로 옮겼던 싱가포르계 은행에서 4년 후 유럽계 은행으로 옮길 때 인터뷰에서 20% 연봉 인상을 요구했는데 인터뷰어가 깜짝 놀라면서 그 자리에서 ok 사인을 주었다. 나중에 입사 후 보스 (당시 인터뷰어)가 말하기를 내가 지원자 중에서 가장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가장 적은 연봉 인상을 요구했었다고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경력자라면 나이를 묻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회사의 부서 특성상 우리가 직접 뽑는 사람은 100% 경력직이었는데 인터뷰를 위해서 내 손에 들어오는 지원서에 생년월일이 없더라도 대학 졸업년도라던가 경력사항을 고려하면 지원자의 나이는 자연스럽게 추측 가능하다. 인터뷰 여부를 결정할 때 항상 보스와 의논을 하였지만 한 번도 나이가 문제가 되었던 적은 없었다. 그 이유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싱가포르에서 4-5년마다 회사를 옮기는 건 매우 일반적이고 바람직하게도 여겨져서 이 사람이 60대가 아닌 이상 앞으로 4-5년 근무하는데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 본인이 40대 후반 이상의 매니저급이라면 (은행에서 Director 이자 매년 인사고과의 최종 평가자인 경우) 일단 자리가 많지 않고 몸값이 이미 무거운 경우가 많아서 이직이 만만치 않다.
다음에는 제한된 인맥이지만 내 주위에서 경력없이 싱가포르에 취업한 경우를 포스팅해보겠다.
싱가포르에서 뜻하지 않은 허송세월 (0) | 2020.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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